성남성범죄전문변호사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송태규씨(63)는 헌혈을 시도하다 체중 미달로 좌절했다. 작은 아쉬움이었지만 기억은 오래 남았다. 20여 년 뒤, 그는 그때의 다짐을 실천으로 옮기며 삶의 방향을 바꿨다.
2001년 교사로 재직 중이던 그는 다시 헌혈에 나섰다. 첫 헌혈을 한 5월 16일 이후 꾸준히 나눔을 이어온 송씨는 2012년 1월 100회, 2016년 8월 200회, 2021년 2월 300회를 달성했다. 그리고 지난 2일, 그는 마침내 400회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때 다짐했던 마음을 실천하고 싶었습니다.” 송씨는 한 달도 빠짐없이 헌혈을 이어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헌혈은 단순한 나눔을 넘어 자기관리와도 맞닿아 있었다. 40대 초반 교통사고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을 때 의사의 권유로 수영을 시작했고, 이후 철인 3종 경기까지 도전하며 꾸준히 몸을 단련했다. 그는 “헌혈을 지속하려면 체력이 필요했고, 운동이 그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철저한 자기관리 덕에 그의 헌혈은 흔들림이 없었다. 헌혈 전에는 술과 약을 삼가고, 해외 출국 후에는 두 달간 헌혈을 쉬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지금까지 철인 3종 등 각종 스포츠 대회에 나선 횟수만 수백 차례에 달한다.
헌혈의 정신은 가족에게도 이어졌다.
아들 호선씨(34)는 200회를 눈앞에 두고 있고, 딸 하늘씨(31)도 140회 이상을 기록했다. 며느리와 사위까지 동참하면서 일가족의 헌혈 횟수는 800회를 넘어섰다. 전국적으로도 드문 사례다. 송씨 가족이 ‘헌혈 명문가’로 불리는 이유다.
송씨는 익산 원광중학교 교장을 끝으로 교직 생활을 마쳤다. 그는 시인이자 수필가이기도 하다. ‘헌혈, 정전되는 당신을 밝히는 스위치’라는 시에서 “누군가에게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 작은 헌혈이 불빛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문학적 감수성과 실천이 결합하면서 헌혈의 가치는 더 깊게 확산됐다.
또 그는 전북혈액원 헌혈홍보위원으로 활동하며 청소년·대학생 강연과 지역 행사에도 빠짐없이 나선다. “나의 기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이 헌혈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그의 가족에게 헌혈은 선택이 아니라 어느덧 생활 일부가 됐다. 송씨는 “헌혈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값진 나눔”이라며 “작은 실천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헌혈을 이어오게 만든 힘”이라고 말했다.
24년, 400회, 그리고 일가족 800회. 송태규 씨와 가족은 작은 나눔이 생명을 살리는 가장 큰 힘임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는 헌혈 정년인 70세까지 500회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에 구금된 한국인 300여명을 전세기에 태워 10일 오후(현지시간) 한국으로 출발한다는 정부 계획이 틀어졌다. 한·미가 공항까지 이송하는 방법 등을 두고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부는 10일 오후 공지를 통해 “조지아주에 구금된 우리 국민의 10일(현지시간) 출발은 미국 측 사정으로 어렵게 됐다”라며 “가급적 조속한 출발을 위해 미국 측과 협의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애초 전세기에 한국인 300여명을 태워 한국시간 11일 오전 3시30분(현지시간 10일 오후 2시30분)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공항에서 출발할 계획이었다. 한국인들은 6~7대 버스에 나눠탄 뒤 구금 시설을 떠나 약 4시간30분 거리(428km)에 있는 공항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 전세기 KE2901편은 이날 오전 10시21분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해 미국으로 향했다.
외교부가 미국 측 사정이 이유라고 밝힌 만큼 구금된 한국인의 의사 파악 지연 등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정부는 한국인 모두의 자진 출국을 추진하지만 미국 측은 한국인 일부는 강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해, 양측 입장이 부딪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자 외교부는 추가 공지를 내고 “(한·미가) 자진 출국과 추방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니다”라며 “한·미 양국은 우리 국민 전원을 자진 출국 형태로 가장 이른 시일 내 귀국시키기 위한 세부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한·미가 출국 방식을 두고 이견이 있는 건 아니라는 취지다. 출국을 희망하는 한국인들은 미국 이민 당국의 ‘자진 출국 동의서’에 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미국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전, 행정부 내부의 의견 조율이 마무리되지 않아 연기됐을 가능성이 있다.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은 전날 한국인 구금 사태를 두고 “그들은 추방될 것이다”라며 “소수는 단지 최종 퇴거명령 시한을 넘겨 여기(미국)에 있는 것 이상의 범죄 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을 구금시설에서 공항까지 버스로 이송하는 방식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게 원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인들의 신체 일부를 결박할지가 쟁점일 수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전날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버스로 이동할 때도 법 집행기관이 고집하는 방식이 있다. 다시 손에 뭘 어떻게 구금하고”라며 정부는 이런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날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의 회담에서 전세기 출발 문제도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또 자진 출국 형식으로 귀국하는 한국인들이 향후 미국에 재입국할 때 제한을 받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협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진 출국은 강제 추방보다 불이익이 적지만, 기존 체류 기간에 따라 일정 기간 재입국이 금지될 수 있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에게 비자 제도 개선 문제도 제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 장관은 9일에 루비오 장관을 만나려 했으나 하루 연기됐다. 한·미 간 전반적인 소통과 협의가 매끄럽지 못한 모습이 잇따라 노출되고 있다.
빠르게만 흐르는 시대에 ‘느림의 미학’을 되새기는 축제가 전북 군산에서 열린다.
군산시는 오는 26~27일 이틀간 군산 우체통거리에서 ‘제8회 손편지축제’를 연다고 11일 밝혔다.
군산 우체통거리는 군산우체국을 중심으로 남북·동서로 각각 200m가량 이어지는 거리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시민들이 즐겨 찾는 만남의 장소이자 도심 번화가였지만 1990년대 들어 신도심 개발이 진행되면서 공동화 현상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변화를 위해 지역 상인들이 직접 나섰다.
2016년 주민들이 300만원을 모아 폐우체통 30여 개를 손질하고 그림을 그려 상가 앞에 세운 것이다. 평범했던 거리는 ‘우체통거리’라는 도로명 주소를 얻었고 이듬해 주민들은 ‘군산우체통거리 경관협정운영회’를 꾸렸다. 2018년 첫 손편지축제가 열리면서 이 거리는 군산 도시재생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축제에서는 느린 엽서쓰기, 나만의 우표 만들기, 감성 엽서 제작 체험이 진행된다. 주민 작품 전시와 공연도 마련돼 방문객들에게 추억과 감성이 어우러진 시간을 선사한다. 우체통거리 상인들은 각종 할인행사로 축제 분위기를 더한다.
배학서 경관협정운영회 회장은 “주민들의 정성과 노력이 모여 지금의 우체통거리가 만들어졌다”며 “찾아주신 방문객들이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말했다.
정삼권 군산시 도시재생과장은 “우체통거리는 주민들이 지역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며 변화를 이끈 사례”라며 “앞으로도 주민주도형 도시재생이 확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